세브란스·백병원·경희의료원 등 대형병원이 직영 도매업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들은 각각 안연케어·화이트팜·팜로드의 지분 49%를 보유해 현행법상 위법은 아니다. 하지만 의약품유통업계는 대형병원이 법망의 허점을 이용해 의약품유통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규탄한다. 나아가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대형병원의 불공정거래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등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경. /사진=머니투데이  DB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경. /사진=머니투데이 DB

◆합법과 위법의 경계 ‘1%’

2011년 6월7일 개정된 약사법 제46조3항에는 의료기관 개설자(의료기관이 법인일 경우 그 임원 및 직원) 또는 약국 개설자의 의약품 도매상 보유를 허가 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된 이 법에 따르면 의료기관, 약국 개설자나 법인이 의약품 도매상 법인의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49%까지는 도매상 지분을 보유해도 위법이 아니다.

이런 맹점을 이용해 의약품 도매업체 지분 49%를 보유한 대형병원이 늘어나자 의약품유통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지분 5%만 보유해도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데 49%면 사실상의 합작사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들 도매업체는 자사의 지분 49%를 보유한 대형병원의 의약품 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매출 3151억원, 영업이익 306억원을 기록한 알짜 의약품 도매업체 안연케어는 아이마켓코리아가 51%, 학교법인 연세대학교가 4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연세대학교는 2013년까지 안연케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법령 개정으로 문제가 되자 일시적으로 안연케어와 거래를 중단한 뒤 2014년 2월 아이마켓코리아에 751억원을 받고 지분 51%를 매각했다. 이후 안연케어와의 거래를 재개했다.

안연케어 사례를 지켜본 타 대형병원들도 유사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설립된 화이트팜은 백병원이 지분 49%를 갖고 있는데 최근 전국 5개 백병원에 대한 의약품 납품권을 성산약품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성산약품의 과거와 화이트팜의 설립 이후 행보를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수상한 점이 많다.


우선 백병원과 독점적으로 거래하며 지난해 매출액 1305억원, 영업이익 40억원을 기록한 성산약품과 그 권한을 넘겨받은 화이트팜은 운영자가 김극수·조찬휘 공동대표로 동일하다. 또 성산약품은 2009년까지 인제연구장학재단이 지분 100%를 갖고 있었다. 인제연구장학재단은 백병원과 인제대 설립자인 백낙환 명예총장이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2010년 성산약품은 청우개발(43%), 청우기업(41.17%), 조찬휘 공동대표(8.33%) 등이 지분을 나눠 보유한 회사로 바뀌었지만 최근 화이트팜이 성산약품으로부터 백병원에 대한 의약품 납품권을 가져갔고 두 회사의 대표가 동일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화이트팜은 인제연구장학재단에서 출발한 성산약품의 연장선에 있는 도매업체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화이트팜이 백병원 의약품 납품권을 독점하면서 성산약품을 통해 백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던 일부 도도매업체들에 과도한 마진을 요구해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부울경의약품유통협회는 지난 9월11일 거래질서위원회를 열고 “최근 발생하는 일부 의료기관의 실질적인 직영도매 편법설립은 건전한 의약품유통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로 기존 의약품유통업계의 존립을 위협하고 국가적으로도 약제비 부담을 늘려 건강보험재정의 손실을 가져오는 등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공정거래를 해치는 일감몰아주기이자 갑질행위로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며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의료기관과 이에 동조하는 도매업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부울경유통협회는 화이트팜의 백병원 의약품 공급권 독점이 시정되지 않으면 청와대 민원실에 진정하는 한편 공정위, 권익위, 복지부 등 유관기관에 고발해 공정한 거래질서가 확립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방침이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도 지난 9월14일 회장단회의를 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법리의 맹점을 이용해 도매업체를 설립하고 의약품 공급과정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으로 갑질행위를 일삼는 일부 의료기관의 행태에 강력하게 대응하기로 한 것.

한국의약품유통협회 관계자는 “대형병원의 도매업체 실질적 보유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며 여러 경로를 통해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각 도매업체의 영업 상황은 외부에서 상세히 알기 어려워 일감몰아주기 등에 대한 직접적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백병원 관계자는 “화이트팜 지분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인 49%를 갖고 있을 뿐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아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경희의료원 전경. /사진=머니S DB
경희의료원 전경. /사진=머니S DB

◆복지부, 팜로드 조사 착수

경희대의료원과 관련 있는 업체가 지분 49%를 보유하며 지난 6월 설립한 팜로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팜로드의 약사법 위반 의혹 등의 조사를 위해 사업소재지인 서울 구로구보건소에 지시했다.

구로구보건소 관계자는 “복지부로부터 팜로드의 특수관계인 등 지분구조에 대한 조사 요청이 들어와 조사를 진행한 뒤 복지부에 회신했다”며 “경희대 법인이 직접 지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경희’라는 업체명을 사용해 경희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법인이 49%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확한 사항은 복지부에서 경희의료원 쪽과 크로스체크를 해서 위법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형병원은 절대적 갑이고 대형병원에 대한 납품권을 쥔 도매업체도 갑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며 “유통사나 제약사 입장에선 가뜩이나 두 갑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는데 대형병원이 도매업까지 직접 관여하는 것은 기업의 존립을 흔드는 부당한 반칙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07호·제5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