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름 모두 바꿨다'… 간첩 총에 쓰러진 이한영 [오늘의역사]
최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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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5 | 0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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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15일 북한 고위층 탈북자 이한영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한영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한 아파트 복도에서 북한 간첩이 쏜 총에 맞았다. 이후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던 이한영은 그해 2월25일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그는 13년 전 북한을 탈북한 김정일의 처조카 리일남이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 리일남… 대한민국 PD 이한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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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생인 이한영은 김정일의 아내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 리일남이었다. 김정일의 처조카였던 그는 북한의 최고위층으로 당시 북한 주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권리를 누렸다.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낸 리일남은 소련(현 러시아) 모스크바와 스위스 제네바 등에서 유학 생활까지 마친 북한 내 엘리트 중 한명이었다. 그랬던 그는 1982년 22세의 나이로 돌연 한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했고 이한영이라는 새 이름으로 신분을 세탁했다. 이한영은 북측의 보복이 두려웠고 얼굴까지 성형 수술하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갔다.
이한영은 이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 학과를 졸업했고 방송국 PD로 취직했다. 국정원의 개입이 있었지만 유학파였던 이한영은 자신의 특기인 러시아어를 활용했고 국제부 PD로 활약했다. 이후 모델 출신 한국 여성과 결혼한 이한영은 딸 하나를 낳으며 국내에 완전히 정착했다. 하지만 방송국을 퇴사한 이후 주택건설 사업에 손을 댔고 횡령죄로 감옥에 가는 등 굴곡진 삶을 살았다.
정체가 탄로 난 이한영… 간첩의 총에 맞아 생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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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은 감옥에서 출소한 후 자신이 가진 북한 고위층의 정보를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김정일 일가의 생활, 집무실의 구조 등을 언론에 알렸다. 그 과정에서 이한영은 모스크바에 거주 중이던 모친 성혜랑과 13년 만에 통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이한영의 진짜 신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것을 안 이한영은 자신이 김정일의 처조카임을 세상에 밝혔고 김정일 일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간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한영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등 단숨에 유명 인사가 됐다.
매스컴을 탄 이한영은 명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북한 당국의 표적이 됐다. 당시 선배의 집에 얹혀 살았던 이한영은 집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변을 당했다. 당시 북한 간첩은 이한영을 설득·회유하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자 결국 암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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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