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동남권투자공사를 산업은행 자회사 형태로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 사실상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헌승 의원(국민의힘)의 관련 질의에 박 회장은 "저희가 자본금을 많이 출자하다 보니 (자회사) 형태가 될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그는 "정부 정책이 결정되면 출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동남권투자은행' 설립을 약속했던 대통령 공약이 '투자공사'로 한 차례 후퇴한 데 이어 이제는 산업은행의 독립적인 기관이 아닌 하위 자회사로 그 위상이 격하됐음을 공식화한 셈이다.
22일 부산 지역사회는 즉각 분노를 터뜨렸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정부의 방침이 알려진 직후부터 "명백한 대통령 공약 파기이자 부산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박 시장은 "과거 정책금융공사의 사례에서 보듯 투자공사 형태는 이미 실패한 모델"이라며 "자금 조달 규모와 탄력성, 정책자금 지원 등 모든 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와 지역 경제계의 반발도 거세다. 시민들은 "산업은행 이전을 무산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회사를 던져주며 '떡이나 먹고 떨어지라'는 것이냐"며 허탈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역 경제계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기존 부산 조직을 이름만 바꿔 자회사로 만드는 '간판갈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렇게 되면 지역 금융 몫을 나눠 먹는 수준에 그쳐 지역 산업 발전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애초 동남권투자공사(은행) 설립은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현 정부 들어 난항을 겪자 대안으로 제시된 공약이었다. 하지만 '은행'이 '공사'로 바뀌고 이제는 그마저도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면서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본래 취지는 퇴색하고 지역의 상실감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